황토색 이끼 자생지역이 보이곤 한다.

참 특이한 이끼도 있구나- 싶어서

가까이 가보니 랜드로버였다.

사자카의 자동차를 파해쳐보자

[렌드로버 프리랜더] 

사자카에 랜드로버가 참 많은데

이 차는 전혀 눈에 띄질 않았다.

워낙 구석진 곳에 콕 박혀있기도 했지만

본넷이 이끼가 핀 것 같은 비주얼 때문에

아무도 관심도 안 가져준 것이다.

“후우.......”

명색에 랜드로버가 이런 꼴이면 되나 싶어

가까이 가봤더니 문득 이봐,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반가워. 사람 냄새 오랜만에 맡아봐.”

퀘퀘한 먼지를 한움큼 먹은 듯 걸걸한 목소리엔 진심이 담겨있었다.

콜록콜록. 환절기라 그런지 감기에 들린 모양이였다.

“다짜고짜 미안한데 지금이 몇 년이지?”

“어, 2019년인데요.”

“벌써... 시기가 그렇게 됐구먼.......”

분위기부터 잡길래 당장 봇짐 들고 튈 준비를 하자

그가 나의 귀를 붙잡는다. 자신을 사생아라고 칭하는 순간부터

봇짐을 풀고 자리를 잡았다. 팝콘이 옆에 없어 아쉬웠다.

“말하기 전에 팝콘 하나만 사올게요.”

“팝콘?”

“요즘 구연동화는 팝콘이랑 즐기는 게 문화거든요.”

나는 말도 안되는 말로 구슬려, 옆에 팝콘을 둘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존재해선 안 될 존재였지.”

“왜요.”

“왜긴, 롤스로이스가 장사 안 된다고 쪼끄만 차 만드는 거 봤냐?”

“걔넨 모닝을 만들어도 1억에 팔 애들인데요.”

“랜드로버는 사막의 롤스로이스야. 그런 애들이 나 같은 놈을 

만들어 내려 한 건 아주- 오래전 이야지-”

내 테클은 조금도 먹혀들어가지 않았고 본격적인 할아버지 모드가 되었다.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가....

랜드로버가 실용적인 4륜구동 차량으로 자수성가에 성공하였다. 

농업이 위주였던 1950년대 경제상황에서 

험로주파능력이 뛰어난 차량이 잘 팔리는 건 당연한 이야기.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옆 나라(?) 사는 애들이 

돈을 꽤 짭짤하게 벌여들인다는 걸 알게 된 랜드로버는 욕심이 생겼다.

“요놈, 물건인데-?”

일명 SUV라고 불리는 요 물건들은 산도 잘 오르면서, 일반 아스팔트 도로도 잘 달렸다.

세상에서 등산하는 게 제일 쉬웠는데 평지 걷는 게 뭐, 어렵겠어? 

야, 우리도 하나 만들자.

그래서 랜드로버의 새로운 계보를 쓰게 된 이가 바로 

회사 이름이랑 잘 혼동하는 ‘레인지로버’ 되시겠다.

세상에서 등산이 제일 쉬우셨다니 아스팔트 도로에서도 그 실력은 발군이였다. 

게다가 랜드로버는 차별점을 주기 위해 ‘고급스런 디자인’을 추가로 얹었는데, 

이게 대박을 쳤다. 되게 고급지더라- 입소문이 나니 판매가 승승장구!

얼씨구나 잘 팔리는구나!

이걸로 80년에 문짝 2개 추가해놓고 20년을 더 우려먹었으니 말 다했지.

“이게 문제였다고! 이게! 이 빌어먹을 레인지로버!”

흥분하는 프리랜더 때문에 잘 먹고 있던 팝콘 몇 개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아이, 잘 듣고 있는데 왜요.”

“이것 때문에 내가 사생아 취급이나 당하는 거야.”

“레인지로버는 잘못한 게 없는데?”

“잘못했어! 왜 랜드로버=고급차 라는 인식을 심어놓냐고! 

덕분에 남들이 나한테 하는 말이 ‘넌 랜드로버 답지 않아’ 라잖아!”

사막의 롤스로이스라고 불리울 만큼 그 럭셔리함을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랜드로버의 목을 옥죄는 꼴이 되기 시작합니다. 

트랜드에 맞춰서 좀 더 합리적인 ‘디스커버리’를 내놓았고 그 일로 기사회생을 하게 됩니다. 

디스커버리는 레인지로버 만큼은 아니여도, 충분히 랜드로버의 럭셔리함을 갖췄죠.

하지만 아스팔트 도로가 보편화되면서 

오프로드에 적합한 차량들이 설 자리를 잃기 시작합니다. 

그나마 고급차란 인식 때문에 숨이 붙어있던 랜드로버지만

많은 자동차회사들이 서서히 오프로드 대신 ‘온로드용 SUV’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랜드로버 또한 온로드용 SUV에 눈독을 들이죠.

그래서 만들어진 게 바로 프리랜더입니다. 

같은 계열사인 로버와 합작하여 만든 프리랜더는 

랜드로버의 주도 하에 만들어졌고 파워트래인은 로버가 담당했죠.

(로버의 엔진은 기아의 카니발 1, 카니발 2에도 들어가 큰 활약을 했습니다. 

V6 2.5L 가스엔진의 정숙성이 상상을 초월하죠.)

.

.

.

“그래도 인기 제법 많았잖아요. 성능은 둘째치고 랜드로버 이름값 때문에. 그건 인정하쥬?”

“야, 성능은 둘째치고라니. 나 제법 잘 나가고 잘 섰어! 

적어도 랜드로버의 이름에 먹칠하진 않았다고!”

“솔직히 랜드로버라니까 샀지. 그거 아니면 살 이유가 없는.”

“임마!”

무섭게시리.

“너 요즘 가만히 있는 애들 홍보하고 다닌다며.”

“ㅇㅇ”

“근데 자꾸 이상한 말 할래?”

“왜요, 더 파고 들어가볼까요? 아주 그냥 구정물 나올 때까지?”

랜드로버는 사실 세계에서 가장 잔-!..... 혹할 정도로 오프로드의 최강자로 군림해왔습니다.

하지만 프리랜더는 다른 랜드로버에 비하면 정말 애기 걸음마 수준이였죠. 

애초에 목적이 오프로드용이 아니였던데다가

굳이 산길을 다닐 이유가 없는 사람들에겐 

오히려 프리랜더만큼 합리적인 차도 없었을 겁니다.

이 조그만 스마트도 일단은 벤츠거든요. 

일반적인 SUV 에 랜드로버가 대문짝하게 달린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니까요. 

게다가 합리적인 차들과 비슷한 가격이라면

웃돈 조금 더 주고서라도 살 수밖에 없죠. 

왜냐, 당신은 ‘사막의 롤스로이스’를 

매우 합리적인 가격에 가질 수 있으니까요. 

[나름 탑기어UK를 따라해봤다.]

“그러니까 힘내- 랜드로버 타고 싶은 누군가가 가져갈지도 몰라요. 비록 디젤에 수동이지만.”

“시끄러... 이생키야. 나 가.솔.린이거든?! 수동이면 다 디젤이냐!!”

한 대 제대로 얻어맞고 넉다운 당했다고 한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