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생 스포티지 사용기

<오히려 너무 앞서간 생김새>

구형 스포티지 모델, 그것도 가솔린 모델은 길거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모델이 아니다. 어쩌다 스포티지를 만나더라도 동글동글한 외모에 걸맞지 않는 털털거리는 화물차 소음과 지저분한 외모는 이내 고개를 돌리게 만든다. 

93년 부터 생산을 시작한 기아의 스포티지는 국내에서는 9만여대가 팔렸지만 해외에서는 60만대가 팔렸다. 개중 대다수는 역시나 디젤 모델이었지만 북미쪽으로는 가솔린 모델만이 수출 되었다. 내가 미국에서 경험한 스포티지도 모두 가솔린 모델이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재미있게도 국내에서는 이뻐보이던 차량도 미국의 풍광속에서 보면 매우 어색하게만 보이는 수가 많다. 그리고 그 반대도 많은데 스포티지가 그런 차량에 속한다. 한국에서 처음 나왔을 때 지인들만 해도 

'저게 뭐냐! 프라이드에 바람 넣은 것 같다', 

'심심한게 곰돌이 같다' 

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미국에서 만나보니 완전 딴 판이었다. 미국에서 만난 스포티지는 차분하고 듬직한 느낌으로 미국의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오히려 한국에서 날리던 차들이 어찌나 초라하고 궁색해 보이던지... 

<탄탄한 하체가 주는 놀라움>

나름 프레임 바디 차량을 많이 경험해 봤다고 생각했고 어느정도는 예측이 가능한 느낌들의 차량이 대부분이것 또한 사실이다. 내 기억에 남는 하체느낌이 인상적이었던 차량은 클라이슬러(chrysler)의 짚 랭글러(Jeep Wrangler)였다. 마치 침대 메트리스 두께의 고무블럭을 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와 유사한 느낌을 94년식 국산 차에서 만나게 되다니 놀랍기 그지 없다. 모든 도로의 상황들이 서너번 필터링되어 전달 된다. 두꺼운 고무 튜브를 타고 기름 칠해진 자갈 밭을 미끌어져 넘는 느낌이다. 이런 차량의 경우 십중팔구 핸들링도 경쾌하기 마련이다. (아직 정비가 미비한 관계로 이 부분은 미확인.) 쌍용의 무겁기만한 바디 느낌이 아니다. 매우 세련된 유럽의 느낌이다. 얼마전 이곳 강원도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많은 눈이 내렸는데 스포티지의 가벼우면서도 탄탄한 하체가 주는 듬직함을 만끽했다. 고가의 얄상하게 빠진 국산 (무늬만) suv들이 이리 저리 들이 받으며 휘청일때 나의 18살 먹은 스포지티가 그렇게 믿음직스러울 수가 없었다. 

<지긋한 달리기 특성이 주는 여유>

미국은 한국과 달리 장거리 주행이 많고 도로조건은 한국보다 일반적으로 좋지 못하다. 그래서인지 그런 도로에 맞게 만들어진 미국 메이커의 차를 타보면 너무 굼떠서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무거운 핸들, 좁은 시야, 더딘 액셀 반응 등등은 '차가 뭐 이래'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미국의 도로에서는 올즈모빌(Olds Mobile)이나 캐딜락(Cadilac) 같은 차가 제격이다. 대륙을 횡단할 거라고 생각하면 만든 차들이다. 날고 긴다는 일본 차들도 (물론 나름의 강점들은 있지만) 미국에서 타다 보면 사람을 피곤하고 신경질적으로 만든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완성차 메이커인 현대의 경우는 그 정도가 매우 심한 측에 든다.먼저 신경질적인 엑셀 반응을 들 수 있다. 왜 차를 그런 식으로 만드는 지 도무지 알수가 없다. 힘이 남아 돌아서 차가 울컥이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타이어 굴러가는 상태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하체도 그렇다. 그 미세한 진동과 소음들이 주는 피로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현대는 초기 일본의 미쯔비시(mitsubishi)와의 제휴로 많은 기술들을 손쉽게 얻었으나 이후 미쯔비시의 몰락과 대량생산체제를 택하게 되면서 토요타(toyota)의 방식을 따르게 된다. (미쯔비시 시절 공부하는 셈으로 만들었던 싼타모-미쯔비시 샤리오, 갤로퍼-미쯔비시 파제로를 보라. 얼마나 탄탄한가.) 반면에 기아는 초기부터 일본 마쯔다(mazda)와 기술제휴를 통해 자동차를 배웠다. 마쯔다라는 회사는 일본내에서도 괴짜 메이커에 속한다. 최근 까지도 로터리방식의 엔진(전 세계에서 유일하다)과 미드쉽 세단 차량을 생산하고 있으니 말이다. 일례로 80년대에 마쯔다의 '카펠라'라는 차는 당시로서도 파격적으로 프랑스 배우 아랑드롱을 모델로 썼고 크기나 중후함을 세단의 가치로 알던 시절에 작은 차체와 뛰어난 운동성능을 내세우며 일본에서 일대 파란을 일으킨 모델이다(일명 스포츠 세단). 이렇게 마쯔다는 독특한 장인정신을 심심히 않게 보여주던 메이커였다. 이 카펠라는 기아의 콩코드로 그대로 국내에  들어와 당시 동급차량 중 가장 작은 차체에 가장 큰 배기량, 갖가지 신기술로 압도적인 운동능력을  선보인다. 개인적으로 아버지의 차가 기아 콩코드였기에 그 매력은 잘 알고 있다.(아직도 기억에 남는 콩코드의 특이한 기술중 하나는 고속주행시 뒷 바퀴가 사다리꼴로 벌어져 자연스레 차체가 지면으로 밀착되게 만드는 기술이다. 무슨 만화 속에나 나올 법한 아이디어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하다. 그런 발랄함과 실행력을 갖춘 메이커였다. 마쯔다는.) 그 콩코드에 쓰였던 2000cc sohc 엔진과 아이신 4단 자동미션의 조합이 스포티지에도 쓰였다. 미션과의 조합을 보면 차를 만든 사람들의 마인드를 엿볼 수가 있다. 마쯔다의 엔지니어들은  '진득하게 살아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스포티지의 중량에 비춰 넉넉한 출력은 아니지만 가지고 있는 힘과는 별개로 차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 미션과의 조합이다. 이 차를 운전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여유가 생긴다. 동승자와 얘기를 나누게 되고 음악에 귀기울이게 되며 경치를 돌아보게 된다. 묵직한 조작 반응과 잘 걸러진 외부의 소음들 그리고 엔진의 힘을 고스란히 뒷 축으로 보내주는 빡빡한 미션의 느낌. 이런 것들이 운전자를 행복하고 듬직하게 만들어 준다.  

<내장재>

정말 칭찬을 하고 싶은 부분이 바로 내장재이다. 미국에서 지낼 때 한창 한국 차들이 판매량을 늘리고 있던 시절 이었다. 미국 애들은 차가 없으면 여간 불편 한 것이 아니기에 일종의 소모품처럼 차를 구입하고 갈아탄다. 그러니 저렴한 차량이라면 어떤 회사의 로고가 붙어있던지 대략적인 욕구(needs)만 만족되면 쉽게 사고 또 쉽게 버린다. 당시 현대의 공격적인 가격 정책으로 매우 싼 가격에 v6엔진에 3000cc suv를 구입할 수 있었고 실제 주변의 애들도 현대 차를 많이들 구입했다. 걔들의 평가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전 세계의 이런 저런 내노라하는 메이커의 차들을 보고 자란 얘들의 말이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먼저 그 친구들은 차의 성능이나 디자인에서는 별 다른 불만이 없었다. 이런 저런 애기들이 나왔지만 공통적으로 불만을 제기 한것이 바로 내장재 였다. 

'너희 현대는 다 좋은데 내장재가 너무 후지다', 

'어떻게 손닿는 곳인데 이런 재질을 쓰느냐, 맥도날드가 만든 것 같다'

등등의 애기를 듣곤 했다.  그런데 이 1994년에 만들어진 국산 자동차의 내장재는 그 품질과 조립 상태가 요즘의 차들과 비교가 되질 않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면 공조장치의 작동감이 매우 뛰어나다. 조명이 모두 살아있는 것도 놀랍지만 레버를 움직일 때 느껴지는 빡빡한 듯 하면서도 정확한 조작감은 정말 마음에 든다.(미세한 단계조절까지 가능하다.) 또 하나, 시트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한 마디로 정말 마음에 든다. 그리고 모직소재의 커버도 왠지 어울린다. 미국에서 스포티지가 서있으면 괜히 기웃거린 적이 많았는데 모든 차들이 바로 지금 내 차와 같은 패턴의 모직 시트였다. 가죽과 다르게 모직은 미끄러짐 없고 단단하게 허리와 엉덩이를 받쳐준다. 

그리고 실내에 덜컹거림이 없다. 이건 뭐가 이유인지 모르겠다. 재질과 조립설계... 머 그런 것들이 만들어낸 결과일거다. 조금 거친 길을 가거나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 프레임 바디의 차량들은 튼튼한 하체 덕에 문제없이 타고 넘어간다. 그런데 온갖 소음은 실내에서 난다. 마치 무너져 가는 판자집에 태풍이 몰아치듯이 부들부들 떨고, 쿵쾅거리고 부서질 듯이 비명을 질러댄다. 그런데 18살이나 먹은 스포티지는 잡소리 하나 없다. 정말 만족스러운 부분이다. 

<근심거리 두 가지>

주절주절 장점을 늘어놓더니 근심거리라니... 뭔고 하니, 먼저 기름 값.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문제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현재 나의 스포티지는 주유경고등이 작동하지 않는다. 바늘이 아래쪽으로 쳐지기 시작하면 불안한 맘에 냉큼 주요소를 찾는다. 덕분에 정확한 연비를 뽑아보진 못했지만 체감상으로도 상당히 많이 먹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제원 상에는 1리터에 15km를 간다고 하지만 느끼기에 대략 7~8km정도인 듯하다. 공인 연비의 절반이라니... 

두 번째 근심은 이렇게 장점 많고 상태 좋은 내 차가 조금 있으면 다시 경원으로 들어가서 미처 못 했던 상품화를 받게 된다는데 있다. 겨울 동안에 해외에 나갈 일이 생겼는데 이 기회에 사장님의 솜씨가 맘껏 발휘되길 바라는 마음과 동시에 비용에 대한 압박이 동시에 든다. 위에서 보았듯이 뛰어난 상태를 지닌 스포티지를 좀 더 완벽하게 손 보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근심인 셈이다.  

**혹시라도 세부 정보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전적으로 기억에 의지해 쓰다 보니 그렇습니다. 너그러이 양해 부탁드립니다.